[부여 피플 +]“이상은 높이 현실은 성실히”
[부여 피플 +]“이상은 높이 현실은 성실히”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9.03.19 17: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용호 원주시 충청향우회 회장, ‘꿈꾸는 백마강’ 부르며 고향 생각… ‘인심 좋은 원주인!, 살기 좋은 원주시!’를 외치며 제2고향 사랑
윤용호 원주시 충청향우회장
윤용호 원주시 충청향우회장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고향에서 마친 후 직장 관계로 강원도 원주에서 생활하던 중 그곳 사람들의 인심과 아름다운 산수에 매력을 느껴 눌러살게 된 것이 37년 되면서 제2의 고향이 됐다. 삶의 여정 속 고뇌에서도 부여인(人)이라는 긍지와 자부로 꺼지지 않는 애향심으로 불타고 있는 강원도 충청향우회 부회장이자 원주시 충청향우회 회장인 윤용호씨를 만나보기로 한다. 편집자 말
 
□ 강원도 원주 정착기
윤용호 회장은 부여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1982년도 직장과 관련 원주로 발령 나 그곳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곳에 가든 가장 먼저 접하고 느끼는 게 사람일 터. 윤 회장은 강원도 사람이 충청도 사람처럼 동질성의 다정다감한 인심에 반했다. 또 원주는 치악산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산수의 수려함에 매료됐다. 그야말로 비단위에 꽃을 얻은 형국으로 강원도 원주의 2번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던 그.

이런 연유로 ‘원주’라는 흰 천에 ‘제2의 고향’이라는 글씨를 써 깃발을 올리게 된 것.
윤 회장은 이왕 여기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에 담금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부터 무장해야겠다고 다잡았다.
그가 내세운 것은 ‘이상은 높이 현실은 성실히’라는 것. 이것이 뜻하는 것은 ‘이상은 높이 가지면서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윤 회장이 갖고 있는 ‘이상’이란 무엇인가?

□ 김종필 전 총리 롤모델

윤 회장이 롤 모델인 김 전 총리를 꿈구며 국회 정론관에서 논평을 하고 있다
윤 회장이 롤 모델인 김 전 총리를 꿈구며 국회 정론관에서 논평을 하고 있다

사실 그는 정치와 관련 인생의 절반 이상을 관계해 왔다.
‘정치를 하는 것’이 그의 이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하겠다고 굳혔다는 얘긴 데 그 계기가 궁금증에 압력을 가한다.
윤 회장이 고등학교 시절인 1971년, 당시 국무총리인 김종필씨가 고향인 부여를 방문해 모 행사장을 찾아 연설한 것에 감명을 받아 “나도 저런 정치인이 돼야겠다”고 각골한다.

여기서 잠깐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해 거론하면 부여 출생으로 공주고를 졸업하고 육사에 입학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동이 돼 일으킨 5·16군사정변에 가담하면서 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시작으로 2번의 총리와 9선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8년6월23일 향년 92세의 일기로 현대사의 풍운아는 역사와 함께 묻혔다. 
당시 윤 회장이 고등학생일 때 고향사람이 국무총리를 했으니 시대적 상황을 비춰보면 웬만한 학생은 인생의 롤 모델로 삼을 법도 하다.

이렇게 이상에 김 전 총리라는 부여의 큰 이름이 우상이 돼 강하게 주입됐으니 쉽게 헤어나지 못했을 것. 
아무리 강하게 주입된 이상이라도 이는 이상일 뿐 그에 걸맞은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어찌됐든 이를 계기로 윤 회장은 제2의 고향에서 이상은 마음에 품고 현실에 입각한 정치 입문을 위해 한 땀 한 땀 꿰어 나갈 출발선에 선다.

□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만남

윤 회장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만남에서 역사의 한 장 썼듯이 만남을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긴다
윤 회장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만남에서 역사의 장을 썼듯이 만남을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긴다

이렇듯 마음은 정치 입문에 있었지만, 그보다 제2의 고향에 정착한 이상 원주를 향한 무언가를 위해 뛰어야겠다는 것에 윤 회장의 가슴을 숨 가쁘게 한다.
여기에 덧붙은 것이 ‘만남’이라는 단어에 함축을 부여한다.
만남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을 이르는 것으로 어느 누구도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는 없다 할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

이에 예를 든 것이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와의 만남을 들었다.
먼저 윤 의사를 조명해보면 충남 예산 출신으로 일제강점 때 중국 훙커우공원 투탄 의거를 한 인물로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손꼽히고 있다.
이 의거가 있기 전 윤 의사는 1931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자리를 이동해 그곳에서 활동했다. 겨울이 되자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칠 의기를 내비쳤다. 1932년이 되자 4월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해 김구 선생의 주관 하에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 등과 협의 및 동의를 거쳐 4월29일 천장절 겸 전승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키로 결정했다. 거사일에 폭탄을 투척 일본군 주요 지휘관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그해 사형 선고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12월19일 가나자와에서 향년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그래도 만약 윤 의사가 김구 선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또는 김구 선생이 윤 의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중국을 뒤흔든 이 거대 사건이 촉발했을까 에 의문을 던져본다.
이를 두고 그는 만남의 소중함이란 이렇게 큰 것이구나! 라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또 윤 의사가 중국에 가기 전 남긴 편지에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이란 비장한 각오의 말을 남겼다. 이 각오처럼 윤 회장은 원주에서 활동했다.

이렇게 되면 제2의 고향 원주에서 이상, 현실, 만남 등은 윤 회장의 그림자가 된 셈이다.
이상은 현실이 뒷받침돼야 하고 현실은 만남이 뒤따라야 풍성하다.

□ 각종 단체 활동 왕성

초기 재)대한걷기연맹 행사지원 위원장을 맡아 기반을 충실히 한 결과 지난해 24회를 맞이하며 원주의 대표적 행사가 됐다
윤 회장은 초기 재)대한걷기연맹 행사지원 위원장을 맡아 기반을 충실히 한 결과 지난해 24회를 맞이하며 원주의 대표적 행사가 됐다

만남은 곧 ‘활동’이다.
활동은 어느 단체나 조직을 설립하거나 가입해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윤 회장은 먼저 지역사회에 헌신·봉사할 수 있는 활동을 선택했다.

초기 재)대한걷기연맹 행사지원 위원장을 맡아 기반을 충실히 한 결과 현재 20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대회로 원주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잡았다. 또 원주시 학교운영위원장 협의회장과 사)한국청소년육성회 원주자문위원을 맡으면서 지역의 교육과 청소년 관련 발전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강원도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아울러 법무부 교정위원협의회 원주부회장을 역임하면서 교정을 통해 맑은 영혼을 불어넣어줘 희망의 삶을 인도하고 밝은 사회를 구현하는 등 성실히 헌신했다. 그 결과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는 영광도 얻었다.

윤 회장은 사회활동을 왕성히 하면서도 향학열도 남다르게 불태웠다. 이런 열정에 더욱 열심히 하라는 동문들의 격려와 박수가 그의 꿈을 실현하는데 가속했다. 윤 회장이 몸담았던 해당 동문들은 그에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상지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회장,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 총동문회 회장, 연세대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등을 맡겨 동문의 발전을 힘쓰라고 주문했다.
이는 그에게 인적네트워크의 발판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만남, 현실이 축적됐으니 이제 남은 건 ‘이상’.
그 이상의 결정체는 현재 자유한국당 중앙당 부대변인, 자유한국당 여의도 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자유한국당 정치대학원 부회장, 자유한국당 중앙당 자문위원 등의 당 관련 부분과 국가원로회의 정책위원,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등 자문 기구 관련으로 요약한다. 이에 맡는 활동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 부여와 원주 사랑

윤 회장이 고향을 잊지 않고 고향을 사랑하는 모임인 충청향우회 2017년 신년교례회에 참석하고 있다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잊지 않는 그.
향우회에 적을 두면서 강원도에 있는 충청향우가 서로의 교류를 통해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있고 재경 부여고 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고향 부여와의 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윤 회장의 애창곡은 ‘꿈꾸는 백마강’으로 항상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백제의 후예로서 부여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슴깊이 새기며 1년에 몇 번씩 고향을 내려온다.

부여는 그를 낳았지만, 원주는 그를 만들었다. 그의 삶의 족적에 원주를 논하지 않고서는 한 문장도 이룰 수 없다. ‘인심 좋은 원주인!, 살기 좋은 원주시!’ 윤 회장이 원주에 있는 이유다.

오늘도 윤 회장은 롤 모델인 김 전 총리를 꿈꾸며 국회 정론관에서 국가와 지역을 위해 쓴소리로 논평을 하고 있다.


/윤용태 기자 yyt690108@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