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만시지탄! 무풍군 학술대회를 갖게 돼 다행입니다”
[기획] “만시지탄! 무풍군 학술대회를 갖게 돼 다행입니다”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9.04.14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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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철학연구소, 제1회 ‘무풍군 이총의 생애와 학문’ 학술회의 개최
향토문화문화유산 제140호 지정 무풍군 사우, 종인들 ‘이총 사당유물 향토문화유산등재 고유제’ 거행

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김영모)는 4월12일 동 대학교 한국철학연구소(소장 최영성)가 주최하고 부여군과 무풍군종회가 후원한 제1회 무풍군 서호 이총(이하 무풍군)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 무풍군 이총
먼저 무풍군에 대해 알아보면 조선 태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근녕군이고 아버지는 우산군 종이며 부인은 생육신의 한명인 남효온의 딸이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김일손, 강경서 등과 교유했으며 1498년 무호사화에 연루돼 유배돼 1504년 갑자사화 때 부친과 형제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무풍군을 포함 이들을 이른바 ‘7공자’라고 부른다.
무풍군은 남효온과 손유손 등과 함께 청담파의 핵심인물로 시문, 음률, 서예 등에 뛰어나 일부 분야에서는 곧잘 안평대군에 비교됐다.
또 무풍군은 겉으론 있는 듯 없는 듯 유유자적하며 풍류객으로 살아갔지만, 실은 훈국파의 부정과 비리에 저항해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더욱 의기투합했다. 결국 연산군과는 하늘을 같이 일수 없는 상황에 치달아 참화를 피하지 못했다.
1506년 무풍도정에 추증됐고 1705년에 정려를 받았으며 1738년 무풍군에 가증돼 이조판서에 증직됐다. 시호는 충민이다

■ 개회사, 환영사, 축사, 감사패 전달

이번 학술대회 주최자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철학연구소 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태용 무풍군종회 회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박정현 군수를 대신해 유흥수 부군수가 축사를 하고 있다

 

학술대회 관계자와 무풍군종회 주요 관계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학술회의 주최자인 최영성 소장은 “무풍군은 사림의 영수인 김종직의 촉망받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남효온과 함께 청담파를 주도했다”고 하면서 “김종직의 학풍을 영향받아 절의정신, 의리사상이 투철했으며 역사인식에서도 남달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종직의 문인들은 무호사화와 갑자사화 때 큰 화를 당했고 무풍군도 아버지와 형제들 포함 모두 7부자가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임금과 왕실을 비판했다는 이유여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신원이 복권되고 충신으로 받들어졌지만, 무풍군이 남긴 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해 삶과 발자취, 역사인식에 대해 조명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었다”고 지적한 뒤 “늦었지만 학술대회를 통해 조명하게 돼 다행이고 작년에 무풍군 묘우와 유물이 부여군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감축드린다”고 개회사를 마쳤다.
 
이태용 무풍군종회 회장은 “바쁜 가운데 틈틈이 시간을 내 고서를 열람하고 연구해 오늘의 결실을 만들어낸 최영성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화답한 뒤 “각별한 배려와 후원을 해준 박정현 군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정현 군수를 대신해 유흥수 부군수는 “오늘 무풍군의 삶과 학문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이곳에서 열리게 된 것에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운을 땐 뒤 “연산군과 왕실을 비판한 무풍군은 연산군의 미움을 사 무호사화에 연루됐고 결국 갑자사화에 부친 및 형제들과 죽임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후인들은 칠공자전을 지어 일곱 부자의 의리사상과 정신세계를 길렀다. 일곱 부자는 도를 지키다 죽음을 당한 이신순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찬양했다.
끝으로 그는 “2018년10월16일 부여군에서는 무풍군의 사당을 비롯해 유물까지 일괄 향토문화유산 제140호로 지정했다”고 말한 뒤 “부여군은 앞으로도 우리나라 정신사에 우뚝한 인물들의 유적을 찾아 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가지는 일에 힘쓰도록 하겠다”고 축사를 마쳤다.

이어 무풍군 종회에서는 2명에 대해 감사패를 전달했다.
먼저 최영성 소장에게는 무풍군에 관한 연구를 매진해 큰 업적을 이룬 점과 무풍군의 삶과 학문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전달했다. 다음 장암면 정암리 김광선씨는 공직 재임 중 향토문화 보존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무풍군의 역사적 위상 재정립과 학술대회 준비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전달했다. 

■ 주제발표
다음은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먼저 최영성 소장은 제1주제에서 ‘김종직의 문인이 돼 청담을 즐기다’, ‘소릉·대원의 복위를 논하다’, ‘무오·갑자의 사화를 만나다’, ‘고고한 정신세계와 복고적 개혁사상’ 등 무풍군의 생애와 역사의식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이남옥 김천대학교 교수는 제2주제에서 ‘무오·갑자 사화와 이총의 피화’, ‘이총의 복권·추숭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 등 이총의 피화와 복권·추숭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또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는 제3주제에서 부여 장암 이총 사우의 건축현황과 관리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 무풍군 사당유물 향토문화유산등재 고유제 거행

고유제 당일 무풍군 사우의 전경이다
무풍군종회에서 고유제를 거행하고 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무풍군 종인들이 사우 앞에서 합동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모든 학술회의를 마친 한 후 무풍군 종인들은 장암면 모 소재 무풍군 사우로 자리를 옮겼다.
‘무풍군 사당유물 향토문화유산등재 고유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그에 앞서 무풍군 사우에 대해 짚고 넘어가면 현 대지에 사우를 조성하면서 사당과 정려각을 이전해 중수했다. 1705년 정려를 받았을 때 정려각을 처음 조성하고 이후 장암으로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풍군 사우의 정면 오른쪽에 있는 무풍군 정려각을 살펴보면 두 개의 중수기가 발견됐다. 처음은 숭정기원후 5번째 을유년인 1885년이고 나머지는 융회 기원년이 1907년으로 1965년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풍군의 정려각은 1885년에 중수하고 이후 사당과 같이 1965년에 중수한 후 2005년에 이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우의 건물 및 석물의 구조를 보면 사우 맨 우측에 비석이 있고 안쪽 옆으로 정려각이 있으며 입구는 삼문 구조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를 올리는 큰 영모재가 있고 뒤를 돌아 계단을 오르면 ‘무성군묘’라고 쓰여 있는 문이 있고 그 안에 사당이 있다. 

사우에는 축하 화환이 놓여 있고 고유제를 지낸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으며 영모재 앞에는 종인들이 제를 지내도록 천막이 쳐 있다.

고유제를 지내기 전 무풍군 종회에서는 투철한 숭조심과 남다른 종친애로 종회발전과 무풍군에 하사된 교지를 보존·보관해 사우와 유품이 향토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게 된 공로로 장암면 고 이원종 종친 부인 김희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재잘거리는 새소리도 잠잠하게 만든 엄숙한 분위기 속에 고유제가 진행됐다. 
고유제란 개인의 집 또는 나라에서 큰일을 치를 때나 치른 뒤에 그 사정을 신명이나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고하는 제사이다. 따라서 이번 고유제는 향토문화유산등재를 고하는 제사라고 보면 될 듯하다.
고유제를 마치고 식사를 한 종인들은 기념촬영 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한편 장암면에 사는 이해용씨는 많은 관계자를 만나 무풍군 사우와 유품이 향토문화재로 등록되고 학술대회가 이루어지도록 그림자 헌신을 했다. 

사당 뒤편의 노란 개나리와 사우 옆 흰 벚꽃이 이날 오전 학술대회 개최와 오후 고유제를 축하하며 떠나는 종인들을 향해 훈풍으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윤용태 기자 yyt690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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