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마을 이야기] 구석기 유물이 있는 인삼과 정원의 마을 ‘좌홍1리’
[발길 따라 마을 이야기] 구석기 유물이 있는 인삼과 정원의 마을 ‘좌홍1리’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9.05.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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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14편 홍산면 좌홍1리

■ 마을 유래 및 개요
좌홍1리는 좌홍2리 함께 서천공주간 고속도로, 국도 4호선, 지방도 제611호선으로 둘러싸여서 지리상으로 이 도로들을 거치지 않고는 진·출입이 불가능한 마을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교통망이 상당히 좋다고 볼 수 있다.

좌홍1리 전경
좌홍1리 전경(뜨래마루 제공)

마을은 지대가 낮아서 옛날부터 비가 많이 오면 침수를 당했다. 마을 주거지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좁게 경지 정리한 구역이 있고 남쪽으로는 매우 넓은 경지정리의 구룡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농업이 발달했다. 또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돼 구석기유물보호지로 지정돼 있다. 이를 볼 때 인류의 정착은 구석기시대부터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백제시대의 적갈색 연질 심발형토기 및 회청색 경질의 타날문토기편이 수습돼 지속적인 인류의 정착 농경 생활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 때는 대산현에, 고려 때에는 홍산현의 영역에, 조선시대 초기에는 홍산현 현내면의 지역이었다. 본격적인 마을의 형성은 고려 중기부터라고 전해진다. 처음 정착한 씨족으로는 제주고씨로서 상당한 기간을 두고 집성촌으로 알려진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현의 아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였던 곳이었으며 이몽학의 난 이후에는 마을이 옛날보다 쇠퇴해 갔으나 조선시대 말기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산군 군내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홍양리, 좌촌 및 상동면의 삼천리 일부를 병합해 좌촌과 홍양의 이름을 따서 좌홍리라 했는데 이때 좌촌은 큰 좌촌 및 작은 좌촌으로 구분됐으며, 큰 좌촌을 좌홍1리, 작은 좌촌을 좌홍2리라 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마을 유래는 기러기가 많이 내려앉아 절경을 예찬해 좌홍이라는 설과 홍산대첩 때 비홍산과 태봉산을 오가던 붉은 기러기가 살았는데 이 마을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설 등이 있다. 어찌 됐든 기리기가 마음에 꼭 드는 마을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동물도 좋아하는 데 사람인들 오죽하랴!법정리의 면적은 1.18㎢다.

5월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연휴로 인해 많은 사람의 이동이 있었지만, 시골의 상황은 못자리를 준비하는 등 본격적인 농번기로 인해 그렇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휴의 달콤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샘이 났는지, 한창 바쁜 농부에게 짬을 주려는지 그동안 잠잠하던 미세먼지가 안내문자가 날아들 정도로 짓궂게 한다. 그래도 일은 일, 연휴 중 첫날인 5월4일 좌홍1리를 찾았다.

■ 표지석 - 똥산 – 우마차턱 - 꽃길

마을 입구에 있는 표지석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표지석이다
표지석이 있는 곳의 똥산이다. 이곳에 우마차턱이 있었고 우측으로 돌출된 부분이 칠성바위 중 1개가 묻혀있다
표지석이 있는 곳의 똥산이다. 이곳에 우마차턱이 있었고 우측으로 돌출된 부분이 칠성바위 중 1개가 묻혀있다
똥산에서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직선 도로의 꽃길이다
똥산에서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직선 도로의 꽃길이다

국도 4호선 좌홍교차로에서 부여 방향으로 160m 가면 우측으로 좌홍1리로 들어가는 진출입로가 있다. 이곳 진·출입으로 인근에 ‘큰좌촌 좌홍1리’라는 표지석이 있어 이를 말해준다.
이 표지석이 있는 곳의 지명이 ‘똥산’으로 말하고 듣기가 좀 어색하다. 이 이름으로 불린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동산이라는 이름이 변이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그도 그런 것이 똥산만이 주위보다 야간 높고 아담한 면적이어서다. 이 야트막한 언덕에는 소나무 등 정원수와 묘지 몇 기가 자리하고 있다. 또 남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뽕나무가 있는 데 이곳에 칠성바위 7개 중 한 개가 묻혀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고 땅을 파야 바위에 대한 존재가 나타날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확인차 파기엔 상황이 좀 그렇다. 아울러 이곳에 ‘우마차턱(옛말 구루마턱)’이 있었다. 우마차턱이란 우마차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를 말하고 턱은 평평한 곳의 한 부분이 조금 높게 솟아오른 자리를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우마차 주차장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가 너무 좁아 우마차를 똥산에 놓고 소 또는 말과 함께 마을로 들어왔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왼쪽으로 영산홍과 왕벚나무 등의 울긋불긋한 꽃이 줄지어있고 오른쪽으로는 둥그스름한 측백나무와 그 사이사이 철쭉이 줄지어있는 직선의 아름다운 ‘꽃길’이다. 지나만 가도 무슨 환영을 받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면 마을도 이 길과 같이 조경이 잘 돼 있으리라는 느낌이 실제보다 앞서기 시작한다.
길 왼쪽에 수로가 있는 데 경지 정리하기 전에는 구불구불한 형태였다. 이 곡선의 시내 옆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개발의 역습으로 묻혀 아쉬움만이 흐른다.

■ 큰좌촌 - 회관 – 이천길 전 새마을 지도자 

좌홍1리 마을회관이고 주위에 느티나무와 정자가 있어 쉼터 역할을 한다
좌홍1리 마을회관이고 주위에 느티나무와 정자가 있어 쉼터 역할을 한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사거리에 마을회관이 있다. 회관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옹기종기 가옥들이 모여있는 이곳이 ‘큰좌촌’이다. 비홍산과 금천의 정기에서 장군대좌형의 명당이 있다 해서 좌촌 즉 마을이 꼭 자리를 잡을 만한 곳에 마을이 생겼다 해서 좌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좌촌의 서쪽에 큰 마을이 형성돼 큰좌촌이라 부르게 됐다.
큰 느티나무 2그루와 쉬엄쉬엄이라고 써 놓은 정자를 주위에 둔 회관에서 최숙자 이장, 김영소 노인회장, 김종관 전 이장 등과 자리를 함께해 마을에 대한 여러 가지 들어봤다.
옛날 이 마을은 주로 메밀을 많이 재배했다. 메밀은 가뭄에 강하기 때문인데 그만큼 물은 이 마을에서 구하기 어려운 소중한 자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옥산저수지가 생기면서 물 공급이 원활해 마을 발전의 기폭제가 돼 진화가 시작됐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회관을 둘러보는데 벽면에 상장이 여러 개 걸려있다. 김정만 전 이장은 이를 아무렇게나 보관하다 보면 소실될 우려가 있어 액자에 넣어 걸어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들여다보면 1977년 쌀우수집단재배단지의 효율적 운영을 기함은 물론 쌀단수 제고 및 증산에 이바지해서 받은 충남도지사 상장, 1998년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돼서 받은 충남도지사 표창장과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증서, 1966년 반공사상 앙양고취 및 반공시범부락 육성 발전에 협력한 공로로 받은 부여경찰서장 표창장, 1964년·1965년 추곡수납 업무수행에 있어 국가양곡정책에 기여한 공적으로 받은 홍산면장 표창장, 체육대회 관련 받은 홍산면장 상장과 다수의 트로피, 1962년·1963년 통상조합비 증수 납기내 완납으로 받은 홍산토지개량조합장 상장 등이 진열돼 걸려있다.
특히 1978년 양질 인삼의 증산으로 마을의 소득증대 도모와 고려인삼의 성가를 높이고자 대전전매지청장이 준 ‘삼마을 지정서’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 마을 대표였던 이천길 새마을 지도자는 마을의 선구적 발전을 지향하고 노력한 인물로 각인돼 현재도 마을 주민들은 회자하고 있다. 이천길 새마을 지도자의 노력으로 마을은 번영을 앞당기고 잘살게 됐다. 그는 부여군 사회정화위원장을 맡았고 인삼 유공자로 알려져 있다. 또 대전일보에서 시상하는 대일비호상을 수상했고 6·25 참전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 인삼밭 - 정원 – 칠성바위

과거 80%이상의 농가가 인삼을 재배해 삼마을로 지정된 바 있다
과거 80%이상의 농가가 인삼을 재배해 삼마을로 지정됐었다
개인 주택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꽃길이다
개인 주택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꽃길이다
칠성바위 중 하나다. 주위는 구석기유물보호지역으로 돼 있다
고목 아래에 있는 돌은 칠성바위 중 하나로 구석기 유물이다. 따라서 이 주위는 구석기유물보호지역으로 돼 있다

회관에서 나와 북쪽으로 난 반듯한 길을 따라갔다. 가다 보니 좌우로 인삼밭이 있다. 이 마을은 회관에서 보았듯이 삼마을로 지정된 곳으로 당시 80%이상의 주민이 인삼재배를 했다. 사실상 인삼은 이 마을의 약용작물로 경제활동의 주 원동력이 됐다. 지금은 당시보다 못하지만, 아직도 몇몇 농가들은 인삼을 핵심작물로 재배하고 있다.
인삼을 재배하다 보니 도둑도 자연적으로 생겨났다. 옛날에 도둑이 인삼밭에서 인삼을 잔뜩 훔쳐 달아나다가 마을을 못 빠져나가고 잡히고 말았다. 이유가 마을의 길이 미로 형태고 도둑은 이 미로를 헤매다 막다른 길목에서 도망을 못가고 잡히고 만 것. 후에 마을 길로 다녀보면 어느 곳에 가면 헷갈린다.

직선 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우측으로 정말 아름다운 꽃길이 있다. 마을 진·출입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꽃길이다. 마을 답사 전 통화에서 최숙자 이장은 “우리 마을은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반가워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정원의 길은 마을 주민 개인이 가꾼 것으로 더 들어가면 보호수 급의 나무들도 있고 자태를 뽐내는 나무도 많다. 그냥 있기만 해도 마음의 아늑함과 풍요가 느껴진다. 정말 보기 힘든 정원이다. 더구나 개인이 했다는 것에 감탄할 따름이다.

또 이곳에 칠성바위 중 1개의 바위가 있다. 칠성바위는 7개의 바위를 말하는 것으로 북촌리에 1개, 좌홍리에 4개, 남면에 2개가 있다. 북두칠성의 별자리와 같은 형태로 바위가 놓여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좌홍리에 있는 바위 4개는 어느 정도 일직선상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고 일부 바위는 일화도 전해지지만, 나머지 지역의 바위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일화가 전해지는 바위는 좌홍리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있었고 칠성바위 중 제일 큰 바위였다. 6·25사변 때 이 바위 밑에 식량을 보관한 사람이 있었는데 부정을 탔는지 급사를 하고 말았다. 그만큼 이 바위는 신성시되던 바위였고 상당히 큰 바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여름에 비가 안 오면 바위 꼭대기에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내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바위가 실종됐다. 40여년전까지 있었다는 이 바위는 어떤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것. 이 바위가 어디로 갔는지 현시점에서 찾을 수 없지만,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며 가능하다면 제자리로 오길 바라고 있다.

앞서 똥산에서는 칠성바위의 실체를 보지 못했지만, 이 정원에서는 보였다. 판판하고 넓은 바위로 고인돌같이 보였다. 그렇다. 이 주위가 ‘구석기유물보호지역’으로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서부여 IC가 이곳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런 관계로 들어서지 못하고 위치가 변경됐다.
더 머물고 싶은 정원에서 나오려니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는다.

■ 바위박이 - 뜰팡 – 홍산농협미곡종합처리장 - 만석지기 터

상당이 큰 홍산농협미곡종합처리장으로 창고 벽에는 칠성바위 중 하나가 노출돼 있다
상당이 큰 홍산농협미곡종합처리장으로 창고 벽에는 칠성바위 중 하나가 노출돼 있다
충화 천둥산이 이곳에 들어와 만석지기가 됐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충화 천둥산이 이곳에 들어와 만석지기가 됐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마음의 정원을 가슴에 담고 입구로 다시 나와 우측으로 돌아 100여m 직진하면 ‘바위박이’라는 곳이 있다. 바위가 박혀있다는 뜻으로 옛날에 나무꾼들이 교원리로 나무를 하러 오가며 이 바위에 지게를 바쳐놓고 휴식을 취했다. 현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서 조금 걸어가니 능이백숙, 옻닭, 엄나무백숙, 닭볶음탕 등을 하는 이곳에서 유일한 식당인 ‘뜰팡’이 있다. 상호가 구수한 이 말은 뜰 또는 토방의 방언이다.
이 식당 옆에 아주 큰 ‘홍산농협미곡종합처리장’이라고 쓰여 있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도정공장이 있다. 홍산농협은 옛 이름이다. 현재 서부여농협으로 바뀌었는데 어떤 이유인지 아직 이름이 바꾸지 않았다.

여기서 되돌아 바위박이로 가서 좌측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향해 능선을 따라가면 첫 번째 도착하는 집이 있다. 이 능선부분이 ‘말랭이’라고 하며 큰 좌촌과 작은 좌촌의 중간지점으로 마을 등성이라 해 그렇게 부른다.
이 집이 만석지기가 살았다는 부잣집이다. 이 집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산이 충화면 천둥산인데 이 산이 집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무슨 말이냐면 현재는 집이 많아 가려져서 천둥산이 안 보이는데 과거엔 시야 확보가 돼 산이 잘 보였다는 의미다. 따라서 천둥산이 집에 들어왔다는 것은 부를 상징한다고 여겨진 것. 그래서 집주인에게 “부자세요?”라고 물어봤다. 돌아온 건 말이 아닌 미소뿐이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집에서 조금 직진하면 옛날 우물이 있었던 자리다.

■ 서당 - 청룡뿌리 - 닭막들 – 줄탱이 - 삽다리들 – 우물제

옛날에 공동묘지가 있던 청룡뿌리다
마을과 평야지대의 경계에 있는 옛날 공동묘지가 있던 청룡뿌리다

계속 직진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조금 직진하면 ‘서당’이 있던 자리다. 회관에서 만났던 김영소 노인회장의 조부인 김재엽 훈장이 서당을 운영했다. 배움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인근에서 많은 사람이 서당을 다녔고 훌륭한 인물도 배출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한양수 23대 충남도지사’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사거리이고 여기서 좌측으로 돌아 직진하면 언덕 위에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면 집 몇 채가 모여있는 거주지로서는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 나온다. 여기가 ‘청룡뿌리’라는 곳이다. 청룡뿌리란 풍수지리학적으로 좌청룡, 우백호로 마을 지형이 좌측을 감싸고 있는 지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이곳이 공동묘지였다. 청룡뿌리와 경계로 해 남쪽 평야지대를 ‘닭막들’이라 한다. 닭들이 막 뛰어놀았다는 들판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줄탱이’가 있고 더 남쪽, 즉 금천까지를 ‘삽다리들’이라 한다. 회관으로 돌아오는 서쪽 평야지대와 마을 사이의 길옆 가정집 안에 우물터가 있다. 이 우물터와 함께 전에 지나온 곳에 우물터 등 2곳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우물터에서 칠석날 ‘우물제’를 지냈다. 우물제(옛말 시암제)를 지낼 때면 풍물을 치며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액운을 몰아냈다.

■ 최숙자 좌홍1리 이장
마을의 특색은 마을도 그렇지만, 가정마다 정원을 잘 꾸며 놓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인심 좋고 사람 냄새가 난다. 이런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특색있는 것을 찾고 있다. 로컬푸드 교육을 받고 많은 것을 느끼며 깨달아 마을공동체 소득창출사업을 모색하게 됐다. 인삼즙, 된장, 고추장, 분말류 등을 만드는 것에 고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삼재배로 알려진 마을로서 이를 부각하면서 인삼즙, 분말 등 인삼 제품을 제조하고 싶다. 또 된장, 고추장 등 장류에도 관심이 많은데 이미 몇 년 전부터 콩 재배를 확대하면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윤용태 기자 yyt690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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