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찬 멋] 부여군 홍산면과 조선 초 영의정 홍윤성 - ①
[알찬 멋] 부여군 홍산면과 조선 초 영의정 홍윤성 - ①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9.07.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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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홍윤성은 문종 즉위년인 145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부정자에 임명됐다. 단종이 즉위한 후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 때 황보인, 김종서 등을 제거하는 데 적극 가담해 정난공신2등에 책록됐다. 이후 세조의 신임으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오르는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홍윤성의 묘는 부여군 은산면 경둔리에 있으며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9호로 지정돼 있다. 묘를 보듯 홍윤성은 부여와 남다른 인연이 있으며 특히 홍산면과 관계가 깊다. 이에 부여군 홍산면과 영의정 홍윤성과 관련해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를 일자별 주석없이 연재한다. 편집자 말

■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7월 21일 임오 1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권준·심회·양정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홍윤성을 기복하다
권준(權蹲)을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심회(沈澮)를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양정(楊汀)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경상좌도 도절제사(慶尙左道都節制使)로, 홍윤성(洪允成)을 기복(起復)하여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경상우도 도절제사(慶尙右道都節制使)로, 권개(權愷)를 병조 참의(兵曹參議)로 삼았다. 홍윤성이 어미 상(喪)을 당하여 홍산(鴻山)에 있었는데, 어찰(御札)로 홍윤성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내가 남도(南道)에 뜻을 두어 경(卿)에게 바야흐로 중한 책임을 맡기려는 때에 갑자기 대고(大故)723) 를 당하였으니, 어찌 그리 불행(不幸)한가? 중외(中外)가 막히고 멀어서 때때로 존문(存問)이 결여된 지 오래이다. 내가 경(卿)의 상제(喪祭)의 일에 혹시라도 미비(未備)한 점이 있을까 염려하여 이미 공가(公家)에서 판비(辦備)하도록 명령하였다.
또 명하여 경(卿)을 기복(起復)하여서 경상우도 병마 도절제사(慶尙右道兵馬都節制使)에 제수(除授)하니, 이러한 거조(擧措)를 경(卿)은 알 것이다. 국가의 대사(大事)를 경(卿)이 아니면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경(卿)은 나의 마음을 몸받아서 사정(私情)을 억누르고, 장례(葬禮)가 끝난 뒤에는 마땅히 속히 소명(召命)하는 데에 나와서, 친히 방략(方略)을 받고 기거(起居)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나라를 위하여 자애(自愛)하라."
하였다. 그때 혹은 금혁(金革)724) 으로 인하여 기복(起復부모의 상중에 벼슬자리에 나아감)하고 혹은 병들어 쇠약하다고 고기[肉]를 권하도록 하니, 상제(喪制)가 침체(沈滯)되어 옛날과 같지 아니하였다. 가끔 조그마한 병으로 인하여 스스로 고기를 먹도록 허락하니, 자신이 꺼려하는 것도 다시 처음과 같지 아니한 자가 있었다.

■ 세조실록 14권, 세조 4년 10월 4일 무오 4번째기사 1458년 명 천순(天順) 2년
충청도 관찰사에게 부모를 뵈러 홍산에 가는 홍윤성을 잘 대접하게 하다
승정원(承政院)에서 교지를 받들어 충청도관찰사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지중추원사 홍윤성(洪允成)이 부모를 뵙기 위하여 홍산(鴻山)에 가니, 그 아비에게 연회를 베풀어 위로하고 그 어미 무덤에 치제(致祭)하라."
하였다.

■ 세조실록 16권, 세조 5년 5월 27일 무신 2번째기사 1459년 명 천순(天順) 3년
관찰사에게 어미의 대상 때문에 충청도 홍산에 가는 홍윤성을 돕게 하다
홍윤성(洪允成)이 어미의 대상(大祥) 때문에 충청도(忠淸道)의 홍산(鴻山)으로 돌아가니,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그 어미 및 조부모(祖父母)·외조부모(外祖父母)의 분묘(墳墓)에 전(奠) 올리는 것을 갖추어 주도록 하고, 또 그 아비 홍제년(洪濟年)에게도 잔치를 내려 주었다.

■ 세조실록 23권, 세조 7년 1월 24일 을축 5번째기사 1461년 명 천순(天順) 5년
승정원에서 교지를 받들어 충청도 관찰사에게 치서하다
승정원(承政院)에서 교지를 받들어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예조 판서(禮曹判書) 홍윤성(洪允成)이 그 아비를 홍산(鴻山)으로 뵈러 가니,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고, 아울러 그 어미와 조부모(祖父母)·외조부모(外祖父母)의 분묘(墳墓)에도 치제(致祭)047) 하도록 하라."
하였다.

■ 세조실록 24권, 세조 7년 4월 11일 신사 1번째기사 1461년 명 천순(天順) 5년
예조 판서 홍윤성과 도승지 김종순 등을 불러 야인의 일을 의논하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예조 판서(禮曹判書) 홍윤성(洪允成)·도승지(都承旨) 김종순(金從舜) 등을 불러서 야인(野人)의 일을 의논하였다. 함길도 도체찰사(咸吉道都體察使) 구치관(具致寬)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아아두(阿兒豆)가 전자에는 비록 죄가 있었으나 지금은 순종을 다하고 있으며 나도 또한 불쌍히 여기어 어루만지고 있으니, 만일 나오거든 경(卿)이 편리한 대로 접대해서 거느리고 오게 하라."
하였다. 홍윤성이 아뢰기를, "전 현감(縣監) 이희철(李希哲)이 활을 잘 쏘니, 청컨대 차례를 밟지 말고 탁용(擢用)하게 하소서."
하니, 이희철은 홍산(鴻山) 사람이므로, 곧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에게 치서(馳書)하여 역마(驛馬)를 주어서 올려 보내게 하였다.

■ 세조실록 29권, 세조 8년 8월 17일 기묘 1번째기사 1462년 명 천순(天順) 6년
화위당에서 주연을 베풀고 종친·재추·성균 생원들과 경서·병서를 강론하다
임금이 화위당(華韡堂)에 나아가서 술자리를 베푸니, 내종친(內宗親) 및 판중추원사 김말(金末)·예조 판서 홍윤성(洪允成)·형조 판서 이극감(李克堪), 중추원 부사 어효첨(魚孝瞻)·송처관(宋處寬)·한계희(韓繼禧), 한성부 윤 황효원(黃孝源)과 승지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겸 예문 성균 박사(兼藝文成均博士) 박시형(朴始亨)·승문원 박사(承文院博士) 김종직(金宗直)·예문 대교(藝文待敎) 허선(許譔)과 성균 생원(成均生員) 김종한(金從漢) 등 5사람에게 경서(經書)를 강(講)하게 하고, 술을 내려 주었다. 임금이 종친(宗親)·재추(宰樞)와 더불어 혹은 병서(兵書)를 논(論)하고 혹은 경사(經史)를 의논하기도 하였다. 홍윤성이 안태사(安胎使)로 경상도 성주(星州)곤양(昆陽)을 향해 떠나려고 하였는데, 돌아올 적에 그 아비를 홍산(鴻山)에 가서 뵙기를 청하니, 충청도관찰사에게 명하여 홍윤성의 어미와 할아버지의 무덤에 치제(致祭)하고 그의 아버지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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