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역사문화연구회 두번째 이야기] 구룡의 역사와 문화
[부여역사문화연구회 두번째 이야기] 구룡의 역사와 문화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9.07.1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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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역사문화연구회(회장 한병호, 이하 연구회)는 7월16일 구룡면사무소에서 ‘구룡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를 갖고 이진현 연구회 자문위원이 회원들과 구룡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의를 진행했다.

이진현 연구회 자문위원이 구룡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구룡면과 관련한 여러가지를 강의하고 있다.
구룡면의 여러 가지에 대해 연구회 회원들과 구룡면 관계자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강의에 앞서 이 회의 회원인 이원복 부여군의회 의원은 “부여군의 향토 역사문화를 위해 불철주야 발굴, 학습, 연구 등에 노력하는 회원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문을 연 후 “부여는 어느 지역보다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고장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할 유산이 매우 많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볼 때 아직도 주위에 잘 못 알려지고 숨겨진 역사와 문화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 회원 여러분이 이를 바로 잡고 발굴해 부여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우수 구룡면장은 “먼저 연구회가 구룡면을 찾아줘 감사하고 구룡에 대한 많은 역사와 문화를 아는 계기가 돼 기쁘다”고 반기면서 “앞으로 구룡에 있는 역사와 문화에 더 관심을 갖고 잘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데 행정력에서 뒷받침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이진현 자문위원의 강의가 시작됐고 강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 구룡면의 연혁, 옛 지명, 공해, 역원, 성곽 등  
백제 때 대산현에 속했고 신란 경명왕 때 한산현에 속했으며 고려초 현종 때 홍산현에 속했다. 조선 태종13년(1413)~고종32년(1895)에는 홍산현에 속했다가 고종32년(1895)~일제초(1914)에 홍산군에 속했다. 1914년에는 홍산군 해안면과 상동면의 일부를 병합해 현재의 부여군 구룡면이 됐다.
고지도속에 구룡면에 있는 지명은 구랑포(九郞浦), 미조천(彌造川), 양천(金陽川), 상제(上堤), 하제(下提), 독서암(讀書巖), 쌍방축(雙坊築), 망심산(望心山), 황차하류(荒次下流), 별동점(別洞店), 동사창(東社倉) 등이 있다.
공해(公廨:예전에 관가의 건물)는 15개소가 있었고 역원은 조선 태종 때 비홍역이 세종 때 이인도찰방 속역으로 있다가 1896년 철폐된 숙홍역이 있었다. 성곽은 토축과 테뫼 방식의 논티산성, 토축과 테뫼 방식의 구봉산성, 토축과 석축으로 한 테뫼방식의 봉황산성 등이 있다.

■ 구룡면과 관련한 대표적 인물
구룡면과 관련한 역사적인 대표적 인물을 보면 먼저 김효종은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거해 낙향했고 이는 광산김씨 부여 입향조가 됐다. 그의 묘는 죽교리에 있고 청일사에 배향돼 있다.
홍윤성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유년기에 홍산으로 이사와 구룡면 독서암에서 수학했다. 이후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 때 황보인, 김종서 등을 제거하는 데 적극 가담해 정난공신2등에 책록됐다. 이후 세조의 신임으로 여러 관직을 거친 후 영의정에 올랐고 그의 묘는 은산면 경둔리에 있으며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9호로 지정돼 있다.
이흥의는 홍윤성의 매부이며 부여현감으로 단종 양위에 분개해 낙향하고 독락정에 은거했다. 이는 서림이씨의 부여 입향조가 됐고 묘는 동방리에 있다.
이몽학은 조선 선조 때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도와 전라도를 방랑했다. 임란 때 반란 계획을 꾀한 후 의병을 모은다는 명분을 내세워 비밀조직인 ‘동갑회’를 조직해 홍산에서 난을 일으켜 홍산-청양-대흥 등을 차례로 함락하고 홍주(지금의 홍성)까지 진격했다. 홍주목사 만전당 홍가신은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으로 반란군의 예봉을 꺾었다. 그러자 이몽학의 부하인 김경창, 임억명 등은 그를 참수하고 항복해 난은 평정됐다. 이 사건으로 죽절리에 있는 그의 생가터는 파가저택의 형이 내려졌다.
윤집은 삼학사의 한사람으로 청나라에서 그의 옷가지를 가져와 내산면 온해리에 묘를 만들었으며 창열사에 배향돼 있다.
이용규는 죽절리가 생가이고 홍주의병에 참가했으며 이후 임시정부 충남대표로 활동했다. 이 같은 독립운동의 활동으로 애국장 서훈을 받았다.
김서규는 일제강점기 전남·전북·경북 지사를 지냈고 단발과 유색의 착용을 장려했다.
정홍임은 부여현감 정사경의 아들로 흥양현감과 사도지정을 역임했으며 죽절리에 묘가 있다.
민관식은 한일합방 때 궁내부대신 민병석의 부친으로 공조참의를 지냈으며 죽교리에 묘가 있다.

■ 구룡면에 속한 문화재 등
구룡면 대표적인 문화재는 금사리에 있는 도지정문화재(기념물)인 숙종43년(1717)에 건립된 창렬사로 삼학사로 일컬어지는 윤집, 오달제, 홍익한을 배향한 사우이면서 서원이다. 여기서 향교, 서원, 사우, 사당을 정리하자면 향교는 중국 공자·노자 등 성인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더불어 유교적 국립학교 기능을 한 교육기관이다. 사우는 선조나 선현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둔 곳이고 이곳에서 학생을 가리키는 사립학교기능을 한 것이 서원이다. 사당은 사대부를 비롯한 일반 민가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또 충신을 모신 곳을 사, 학자를 모신 곳을 서원이다.
창렬사가 중요한 것은 대원군이 전국 450개 서원을 철폐할 당시 47개만 남겨놓았는데 이중 충남에는 논산 돈암서원과 노강서원, 그리고 이 창렬사 등 3곳만 존속시켰다. 창렬사가 철폐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로는 삼학사를 모신 위상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종의 친필 현판이 있다는 것.
창렬사에는 현판이 2개가 있는데 경종1년(1721) 6월의 사액과 경종1년 윤6월의 선액이 있다. 사액은 예전에, 임금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새긴 액자를 내리는 일을 말하고 선액은 임금이 직접 글씨를 써서 내려보내던 일을 말한다. 따라서 창렬사는 대원군 절대권력의 칼날을 빗겨나갈 수 있었다. 이 창렬사 내에는 도해각이라는 강당이 있다.
구룡면에는 금사리 성당 앞에 리정우의 효자비와 죽절리 이도성·이조옥 효자의 정려가 있고 죽교리에는 향토문화유산인 광산 김재훈의 처가 남편 사후 순절한 것을 기리기 위한 열녀 연안이씨 정려가 있다.
한편 도지정문화재(기념물)는 태양리 석실고분, 금사리성당 등이 있고 도문화재자료는 용당리 우물이 있다. 또 향토문화유산으로는 금사리 독락정지, 태양리 고인돌군 등이 있다.

■ 구룡면에 있는 비(碑)와 일제강점기 신문기사 등
비석으로는 1797년에 세운 현감 이정인 이후원 선정비(縣監李候廷仁李候厚源善政碑), 1858년에 세운 현감 이유응 애민영세불망비(縣監李候儒膺愛民永世不忘碑), 1898년에 세운 군수 김병대 청백구민선정비(郡守金公炳大淸白救民善政碑), 1952년에 세운 반공청년단 위령비(反共靑年團同志慰靈碑), 1982년에 세운 송은 박길화선생 기념비(松隱朴吉和先生紀念碑),  1982년 석정 이길선생 항일의적비(夕汀李佶先生抗日義蹟碑), 1985년에 세운 애국지사 조병철선생 추모비(愛國志士曺秉哲先生追募碑), 1988년 세운 국민포장 애국지사 이용규공 생가지비(國民褒章愛國志士李容珪公生家址碑)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구룡면과 관련한 주요 기사를 날짜순으로 신문사, 제목 등으로 정리한다.
매일신보에 게재된 1923년2월18일자 ‘군정서 비서 강철구 가정부공채로 군자금 수합’, 매일신보에 게재된 1923년4월16일자에 ‘구룡면 논티리.금사리장 단연동맹 저금’, 매일신보에 게재된 1925년6월9일자 ‘유지 박남규씨 미거. 3천원 기탁 극빈호 분급’, 동아일보에 게재된 1926년1월30일자 ‘박성호씨 만주속 구입 50호 분급(리민회 석비 건립)’, 매일신보에 게재된 1926년12월9일자 ‘혁혁한 공훈 우량공직자 표창(구룡면장 김영규)’, 매일신보에 게재된 1930년10월3일자 ‘금천개수 운동(4천여 정보 수해 충남도당국 고구중)’, 조선중앙에 게재된 1934년3월6일자 ‘농촌부인 갱생자 공동근로(구룡면 동방리 27명)’, 동아일보에 게재된 1937년12월24일자 ‘구룡면소위치 쟁탈전 격열화(논티.태양) 등이다.

■ 공진과 특산, 역사 용어, 관직, 지명 등
공진(예전에 백성 이 나라 에 세금으로 특산물을 바치는 일을 이르던 말)과 특산으로는 후지(厚紙:두꺼운 종이), 활치(活雉:살아있는 꿩), 생압(生鴨:살아있는 오리), 담죽엽(淡竹葉:조릿대풀 잎), 조홍시(早紅枾:일찍 익은 감), 하마(蝦蟆:양서류 청개구릿과에 속한 종), 모시(苧:저), 칠(漆:옻), 게(蟹:해), 자호(紫胡:여러해살이풀인 시호의 뿌리), 현삼(玄蔘:현삼과에 속하는 다년생초) 등이다.
한편 어려운 역사 용어, 관직, 지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질청(作廳:아전의 집무처), 마름(舍音:지주의 대리인), 조이(召史:결혼한 양인의 아내), 마지기(斗落只:씨한말을 뿌릴 땅), 환자(還上:대여곡), 발괄(白活:탄원서), 데김(題音:관장의 판결문), 번질(反作:뒤엎어 요리함), 흘림(流音:초벌 속기록) 등이다.
관직은 사복시(司僕寺:조선시대 왕이 타는 말·수레 및 마구와 목축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좨주(祭酒:고려와 조선 전기에 걸쳐 국자감·성균감·성균관에 두었던 종3품의 관직명), 좌복야(左僕射:고려시대 상서성의 정2품 관직이고 조선 초기 삼사의 정2품 관직명)이고 지명은 배천(白川: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합천(陜川:경남에 군의 지명) 등이다.

이날 강의는 어린이도 함께 동석해 구룡의 역사문화 강의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강의를 마친 후 김우수 면장은 기회가 있다면 다시 구룡에서 강의를 해 줄 것을 바란다는 후문이다.

 

윤용태 기자 yyt690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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