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역사문화연구회 세번째 이야기] 세도의 역사와 문화
[부여역사문화연구회 세번째 이야기] 세도의 역사와 문화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9.08.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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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역사문화연구회(회장 한병호, 이하 연구회)는 8월21일 세도복지회관에서 ‘세도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를 갖고 이진현 연구회 자문위원이 회원들과 세도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의를 진행했다.

이진현 연구회 자문위원이 겸재 정선이 그렸다는 '임천고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의에 앞서 한병호 연구회 회장은 “본 연구회는 매달 지속적으로 읍면을 순회하며 부여군에 숨어있는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역사와 문화 강군인 부여군에 대해 많은 군민이 애향심이 가졌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연구회 회원인 이원복 부여군의회 의원은 “관 주도로 해야 할 일을 순수 민간단체가 대신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치켜세운 후 “세도면은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번 기회를 계기로 많은 사람에게 세도면이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김봉태 세도면장은 “먼저 연구회가 세도면을 찾아줘 기쁘고 감사하다”고 반색하면서 “연구회의 강의를 통해 세도면을 좀 더 자세히 알고 면민들에게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돼 세도면을 더욱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어 이진현 자문위원의 강의가 시작됐고 강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이진현 연구회 자문위원이 세도면의 역사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혁, 옛 지명, 공해, 역원, 사창, 산성 등  
세도면은 백제와 신라 때 가림현에 속했고 고려 때 임주군에 속한 후, 조선 태종13년(1413)~고종32년(1895)에 임천군에 속했다. 임천군은 고종32년(1895)에서 1914년까지 초동, 신리, 성북, 백암, 인의, 세도 등의 면이 구성됐고 1914년 초신, 성백, 인세 등의 면이 세도면으로 폐합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지도 속 세도면에 있는 지명을 살펴보면 구즉산(九卽山), 성림사(聖林寺), 고암(鼓岩), 반호(盤湖), 외지제(倭池提), 시라제(時羅堤), 고다제(高多提), 고다진(高多津), 고성진(古省津), 낭청진(浪淸津), 청포진(菁浦津), 검물교(黔物橋), 현포교(玄浦橋), 동2사창(東二社倉), 화징개(花中開), 토정(土亭), 산바래기(山望), 약정재(藥亭峴), 홍가골(홍가골), 백가골(백가골), 유가골(유가골) 등이 있다.
 
또 공해(公廨)는 16개소가 있었고 역원인 영유역(靈楡驛)이 고다진원(반조원)에 있었다. 아울러 사창(조선시대 각 지방 군현의 촌락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은 동이사창(東二社倉)이 있었으며 산성은 토성산성과 화수리 산성 등이 있다.

■ 역사인물
조개평은 풍양조씨 부여입향조인 조신의 둘째 아들로 조선 태종 때 사옹원정을 역임했다.
조지서는 가림조씨로 조선 성종 때 청백리로 녹선됐고 충효로 이름이 났으며 시문에도 능했다. 지평·창원부사를 지낸 후 학문을 연구하다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로 화를 입었다.
이강과 권각은 선조 임진왜란 때 조헌이 이끄는 의병에 참가했다가 금산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들은 충신정려를 받았다.
류동수는 문화류씨로 인조 때 노성현감을 지내고 천안군수를 역임했다. 이후 호조판서에 추증됐고 임천면 간곡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다.
 
정시형은 광주정씨로 호는 반주(盤州)이고 7개 읍의 수령과 여러 관직을 거친 후 첨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다. 반조원리에 그의 별업인 사가정(고암정사) 터가 있다.
조성복은 풍양조씨로 경종 때 집의가 돼 왕에게 세제(영조)의 대리청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려 신임사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돼 옥사했다. 신임사화 때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임천면 반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다.
윤광안은 파평윤씨로 호는 반호(盤湖)이고 충청도·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했으며 경상도 관찰사 당시 송시열을 배향한 운곡서원을 훼철해 사문난적으로 몰려 유배됐다가 판서에 올랐다. 그는 말년에 반조원리에 삼의당(반호정사)을 지었고 그 터가 남아있다. 
조중구는 풍양조씨로 호는 비아(非我)이고 천흥학교를 설립하고 교감을 지냈으며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의원을 역임했다. 중국군이 들어오면서 무력항일투쟁에 가담했다. 이런 이력으로 그는 애국장을 수훈했다. 그의 충훈비가 있고 간대리 복지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 문화재 등
세도면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재는 산유화가와 세도 두레풍장이 있다.
먼저 산유화가는 모심는 첫 메김구인 “산유화야 산유화야”에서 발췌한 것으로 세도면에 전승돼 내려오는 농요이다. 이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돼 있다.
또 세도 두레풍장은 농촌에서 농사일이나 길쌈 등을 협력해 마을 일을 함께하기 위해 만든 공동노동조직인 두레에서 농사일 등 고단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풍장을 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세도에서도 이 같은 일이 행해져 내려오고 있다. 세도 두레풍장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28호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자료는 동곡서원과 동사리 석탑이 있다.
동곡서원은 고려 공민왕 때 회양 부사 조신의 충절을 추모·제향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2호로 지정돼 있다.
또 동사리 석탑은 세도면 동사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탑으로 현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돼 있다.

향토문화유산으로는 동곡서원 흥학당, 가회리 장군제, 이강 묘 및 정려, 삼의정터 및 제방림, 조성일부부 정려비, 임채원 정려, 목천상씨 안동권씨 정려, 토성산성, 윤이수·윤창수·윤갑 정려, 낭산사, 조응록 영정, 조응록 영정 이모 본, 강의성·강희 정려, 다근진나루 및 구경정, 귀덕리 고인돌 등이 있다.

■ 서원, 정려, 누정 등
서원은 동곡서원과 낭산서원이 있다.
먼저 동곡서원은 세도면 동사리에 있다. 고려 후기 충신 조신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순조 때(1822) 지방유림의 공의로 창건을 논의했으나 힘이 모자라 이루지 못하고1930년 대에 이르러 건립돼 위패를 모셨다. 
또 낭산서원은 1742년 지방 유리의 공의로 낙수 조광형의 사당을 세도면 사산리 세우고 춘추로 향사를 지냈다. 이후 인근의 많은 선비가 조광형의 학문은 가학에서 나왔다고 공론화해 1857년 그의 조부인 수죽 조방직과 부친인 죽계 조응록을 모시고 세도면 수고리로 이건해 낭산서원이라 개칭했다.

정려는 부여군에서 세도면이 다소 많은 편이다.
이강 정려각은 수고리에 있고 향토문화유산 제130호로 지정됐다. 이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을 따라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충신이다.
임채원 정려각은 귀덕리에 있고 향토문화유산 제101호로 지정됐다. 임채원은 부모에 대한 효행이 지극해 선비들의 추천으로 이품직과 함께 정려가 하사됐다.
조성일 부부 정려비는 동사리에 있고 향토문화유산 제132호로 지정됐다. 조성일은 효자로 부인 온양 정씨는 열녀로 1748년 정려를 명하고 정려각을 세웠지만, 1765년 정려각이 훼손하자 1790년 현재의 비를 세웠다.
안동권씨 및 목천상씨 정려각은 동사리에 있고 향토문화유산 제141호로 지정됐다. 조성좌의 처 안동권씨(유목자 출산 후 자결)와 조종언의 처 목천상씨는 시할머니와 손자며느리의 관계로 순종 32년과 영조3년에 각각 열녀로 인정받아 정려가 하사됐다.
윤이수·윤창수·윤갑 정려각은 각대리에 있고 향토문화유산 제120호로 지정됐다. 이들은 남원윤씨로 윤이수는 1738년, 윤창수와 윤갑은 1766년 3대에 걸친 효행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강의성 및 강희 정려각은 귀덕리에 있고 향토문화유산 제138호로 지정됐다. 이들은 부자지간으로 효성이 남달라 정려를 받았다.
 
누정으로는 간대리 금강변 다근암에 구경정이 있다. 이 지역에 사는 경인년(1890) 출생의 9명이 1931년에 지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1983년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사대부 묘 및 비석 등
사대부 묘로는 풍양조씨 5곳의 선영에 조신은 장암면 점상리 덕림마을에, 조개평은 세도면 동곡마을에, 조세현은 장암면 북고리 노동마을에 각각 있다. 또 조박, 조전소, 조시구 등은 세도면 동사리에 있다.
류동수는 세도면 화수리에, 윤광안은 세도면 반조원리에, 이강은 세도면 수고리에 있다.

비석으로는 동사리에 조시구 묘갈명과 동곡서원 원정비가 있고 수고리에 낭산사 원정비가 있으며 화수리에 류동수 신도비가 있다. 또 반조원리에 윤광안 신도비가 있고 귀덕리에 암행어사 이범조 선정불망비와 임천군수 김병기 영생불망비가 있으며 화수리에 사인 이성춘 시혜불망비가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청송리에 홍성겸 여사 기념비가 있고 부여를 빛낸 100인 중 한 사람인 의인 주병탁 추모비가 세도중학교에 있다.
3·1독립운동 기념비가 청포리 청포교회 앞 및 복지회관 입구에 설치돼 있다.
이 기념비에는 1919년3월10일 청포교회 부설 창영학교 주축으로 교사 및 신도 등이 태극기 제작 등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 준비 및 진행 과정을 담고 있고 엄창섭(애족), 고상준(애족), 추병갑, 강세향, 윤동만, 정기섭, 김종갑, 추성배, 서삼종(표창), 한규섭(표창) 등의 독립투사 이름이 적혀 있다.

■ 일제강점기 신문기사 등
일제강점기 세도면과 관련한 주요 기사를 날짜순으로 신문사, 제목 등으로 정리한다.
황성신문에 광고된 1908년6월9일자 ‘임천군정법학교 설립 발기문’, 매일신보에 게재된 1915년4월26일자 ‘피고 조중구에 대한 부정한 도당의 예심종결’, 동아일보에 게재된 1921년5월9일자 ‘허죽재의 인격의 건설에 대한 청포리교회 강연회’, 매일신보에 게재된 1926년6월14일자 ‘면장 이하 세도여자기업전습소 낙성 권장’, 동아일보에 게재된 1931년9월17일자 ‘세도 장산리청년농우회 조직 및 야학개설’, 조선중앙에 게재된 1933년10월4일자 ‘군계도선권 양군에서 쟁탈전 및 궐기대회’, 조선중앙에 게재된 1934년12월16일자 ‘가회리에 늑대가 출몰해 돈 2두를 잡아먹음’, 동아일보에 게재된 1939년4월9일자 ‘55세 글방 선생이 짝사랑의 분풀이 이웃처녀와 결혼식 야로’ 등이다.      
  
■ 공진과 특산 등
공진(예전에 백성 이 나라 에 세금으로 특산물을 바치는 일을 이르던 말)과 특산으로는 모시(苧:저), 옻(蕩漆:탕칠), 천문동(天門冬:바닷가에서 자라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백화사(白花蛇:맬라닌색소과립이 함유되지 않아 온몸이 유백색을 띠는 뱀. 흔히 백사라 함), 담죽엽(淡竹葉:조릿대풀 잎), 적전(赤箭:난초과 천마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참게(蟹. 許筠 惺所覆瓿 藁), 종어(宗魚:천하제일 진미로 꼽히는 동자개과의 민물고기로 유명함), 위어(葦魚:청어목 멸치과의 회유성 어종으로 웅어 또는 우어라고도 함. 뼈채 먹을 수 있는 맛이 좋은 물고기로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지곤 했음), 석수어(石首魚:참조기, 보구치 등을 통틀어 이름), 하돈(河豚:참복과에 속한 바닷물고기) 등이 있다.

특히 이진현 자문위원은 강의 중 특이한 말을 전했다.
수고리에 이완용의 묘가 있다는 것. 하지만 이 묘의 상석에는 부인이 함평이씨로 음각돼 있어 친일파 이완용의 부인이 양주조씨와는 엄연히 구별돼 친일파 이완용의 묘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런 오해가 낳은 것은 본관도 같고 한자도(李完用) 똑같아 벌어진 촌극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수고리 이완용의 후손들은 이런 오해로 인해 많은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바로 알아 후손들의 근심을 덜어달라고 부탁했다고 이 자문위원은 전했다.
 
윤용태 기자 yyt690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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