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찬 멋] 부여 홍산현과 조선 초 영의정 홍윤성 - ③
[알찬 멋] 부여 홍산현과 조선 초 영의정 홍윤성 - ③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9.10.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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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실록 45권, 세조 14년 2월 22일 계축 3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윤덕녕이 홍윤성의 비리를 밝히다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 등을 불러 입내(入內)하여 옥사(獄事)를 의논하게 하고, 또 윤덕녕(尹德寧)을 불러 김석을산(金石乙山)이 권세를 빙자하여 횡포한 짓을 방자하게 하고 그 지아비를 구타하여 죽인 일을 다시 물으니, 윤덕녕(尹德寧)이 진언(進言)하기를,
"첩(妾)이 홍정승(洪政丞)의 불법(不法)한 일을 다 말하려 하여도 모두 마땅히 말할 바가 아니나, 그러나 첩의 지아비를 죽인 일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연고가 아닙니다. 지난해 가을에 홍윤성(洪允成)이 처음 정승(政丞)이 되니, 고을 사람이 모두 한 시골에서 드물게 있는 일이라 하여 관노비(官奴婢) 2구(口)를 주었는데, 당시 첩의 지아비는 유향소(留鄕所)074) 의 장무(掌務)가 되어, 홍윤성에게 장실(壯實)한 노비(奴婢)를 주지 않았다 하여 첩의 지아비를 곤장[杖]을 때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또 지난해 홍윤성이 아비의 초상을 당하여 시골에 와서는, 군인(軍人) 2백여 명을 청하여 첩의 집 뒷산의 소나무를 거의 다 벌목하고, 수일이 못되어 또 사람을 보내어 첩의 집 동산 안의 나무를 밝게 기록하여 장차 다 벌목하려 하므로, 그때 홍윤성의 첩(妾) 복지(福只)가 홍윤성의 여막[廬次]에 있어, 첩의 마음으로 생각하기에는 복지에게 청하여 홍윤성에게 말하면 동산 안의 나무가 온전하겠기에, 즉시 주찬(酒饌)을 갖추어 가서 먹이고 이를 청탁하였더니, 복지가 응낙(應諾)하므로 마음이 스스로 기쁘고 다행하였는데, 얼마 아니되어 군인(軍人) 1백여 명을 보내어 동산 안의 잡목(雜木)도 다 베어 냈습니다. 첩의 지아비가 폐려(弊廬)에서 수십 년을 기른 나무가 하루아침에 권세하는 이에게 탈취당하였어도 궁벽하고 황폐한 먼 땅에서 호소할 데가 없고, 또 도망한 장정과 숨은 군졸은 모두 그 집에 있으며, 홍산(鴻山) 한 고을의 태반이 붙좇고 그 붙좇지 않은 자는 특히 궁한 백성뿐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최윤(崔倫)에게 묻기를,
"네가 관노비(官奴婢)를 사람에게 준 것은 어째서이냐?"
하니, 최윤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시골의 풍습인 까닭으로 신이 부득이 좇았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도망한 장정과 숨은 군졸은 무슨 말이냐?"
하니, 최윤(崔倫)이 역력히 헤아리므로, 명하여 이를 쓰게 하였다. 처음에 김지경(金之慶)이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되니, 홍윤성(洪允成)이 가서 전송하려는데, 김지경은 마침 선고(先考)의 기일(忌日)이고 또 병이 들어 보지 못하여, 홍윤성이 혐의를 머금고서 돌아갔다. 그날 저녁에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이 또 와서 전송하려 하였는데, 모두 병이라 하여 보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윤덕녕(尹德寧)이 임금에게 진언하기를,
"관찰사(觀察使)의 경개(耿介)075) 함이 이와 같은데도 단지 윤동질삼(尹同叱三) 등만을 가지고 고의로 살인(殺人)한 것이 아니라 하여 방면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실책인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김지경(金之慶)에게 이르기를,
"홍윤성(洪允成)은 대신(大臣)인데, 너는 어찌하여 보지 않았느냐?"
하니, 김지경이 대답하기를,
"신(臣)은 바야흐로 풍병(風病)이 들었으니, 대신(大臣)의 연고라 하여 무릅쓰고 참고서 일어났다가 병이 혹시 더 발하게 되면, 끝내 전하(殿下)의 위임한 뜻을 저버릴까 두려웠던 까닭으로 신은 나가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다시 묻지 아니하였다. 또 명하여 홍윤성의 비부(婢夫) 백기(白奇)·소남(小南) 등을 내정(內庭)에 잡아 와서 윤기(尹耆) 등이 대신(大臣)을 모해(謀害)한 일을 무고(誣告)한 것을 고신(栲訊)하게 하고, 즉시 윤기 등을 방면하여 보냈다.

■ 세조실록 45권, 세조 14년 2월 25일 병진 3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사헌부·사간원에서 올린 홍윤성을 치죄하라는 상소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이극돈(李克墩)·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 조간(曹幹) 등이 교장(交章)085) 으로 상소(上疏)하기를,
"신(臣) 등은 홍윤성(洪允成)의 불법(不法)한 일을 가지고 그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였으나, 윤허(允許)를 입지 못하오니 결망(缺望)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법이라는 것은 규구 준승(規矩準繩)086) 이 되는 것으로서 일세(一世)를 유지(維持)하여 후대(後代)에 드리워 보이는 것이니, 그 사이에 내렸다 높였다 하는 것은 불가한 것입니다. 나계문(羅季文)은 아무 죄도 아닌 것으로써 매질하는 아래에서 죽었는데, 그의 아내 윤덕녕(尹德寧)이 통분(通憤)하여 부르짖는데도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천연(遷延)하고 느리게 하여 지금까지 원수를 갚지 못하고, 그 원통한 것을 밝히려 한 지가 오래이었습니다. 다행히 전하(殿下)께서 여기에 머무르시었으므로, 윤덕녕(尹德寧)이 수일(數日)의 노정(路程)을 오직 걸어서 빨리 고(告)하여 그 간의 일과 정상을 전하께서 일일이 들으시니, 지아비를 위하여 원수를 갚는 것은 곧 천리(天理)의 자연(自然)이며,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홍윤성(洪允成)은 두 번이나 글을 통하여 억눌러 신원(伸冤)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도리를 아는 대신(大臣)이라면 차마 하지 못할 것인데도, 하물며 오늘 사람을 시켜 꾀이고 내일은 사람을 시켜 협박하게 하며, 또 내일도 사람을 시켜 욕(辱)되게 하니, 마땅히 윤덕녕(尹德寧)은 더욱 분원(憤怨)을 품어 호통(呼痛)함을 마지 않을 것입니다. 또 소인(小人)을 유인(誘引)하여 무고(誣辜)를 얽어 매어, 윤기(尹耆)·송복흥(宋復興) 등 5, 6인으로 하여금 거의 대죄(大罪)에 빠지게 하였으며, 전하(殿下)께서 친문(親問)할 때에 이효생(李孝生)의 고초(告草)를 가지고 부끄러움이 없이 계달(啓達)하여, 거짓을 꾸며 엄폐하는 데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으니, 성명(聖明)의 아래에서 어찌 이와 같음이 있겠습니까?
홍윤성(洪允成)은 훈구(勳舊)의 대신(大臣)이라 성상의 대우하심이 융후(隆厚)하고, 지위도 이미 극진하였으며, 세도도 이미 중(重)하였는데도, 기세를 타서 사람을 능멸하고 스스로 근신하지 않고서 노복(奴僕)으로 하여금 세도를 끼고 방자한 짓을 행하게 하되 꺼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김석을산(金石乙山)의 살인(殺人)한 원인과 귀현(貴賢)이 옥수를 겁탈하게 한 조짐도 모두 홍윤성이 빚어냄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며, 비부(婢夫) 이효생을 아전의 우두머리로 삼고, 노부(奴父) 지생(枝生)을 형방(刑房)으로 삼으며, 홍산(鴻山)의 한 고을을 자가(自家)의 사사[私]를 삼았으니, 현수(縣守) 최윤(崔倫)도 또한 그의 노복(奴僕)입니다. 살인(殺人)은 중한 일인데도 오히려 또 이와 같이 비호하였으니, 기타의 작은 일은 무엇인들 구하여 얻지 못하겠습니까? 도망한 장정을 숨겨 들이고 남의 동산에 있는 나무를 탈취한 것은 특히 작은 일입니다. 죄가 이미 이와 같은데도 전하께서는 공신(功臣)이라 하여 그대로 두고 논죄하지 않으시니, 대신(大臣)을 높이는 예(禮)와 공신을 보전하는 도리는 지극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그러나 법에는 권도(權道)와 경법(經法)087) 이 있고 죄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으니, 홍윤성이 사유(赦宥) 전에 범한 것이라면 물론 가하겠지만 사유(赦宥) 뒤에 무고(誣辜)를 얽어 만들어 몽롱하게 계달(啓達)한 죄를 어찌 공신이라 하여 불문(不問)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 일세(一世)를 유지하여 만대(萬代)의 법을 드리워 보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윤덕녕(尹德寧)은 궁촌(窮村)의 필부(匹婦)로서 천안(天顔)을 지척(咫尺)에 모시었음은 진실로 만분(萬分)의 다행함이고, 또 조용히 그 쌓인 바를 다 진달하여 날마다 전하의 명단(明斷)을 바라는데, 이제 공신이라 하여 논하지 않는다면 그 뜻이 장차는,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권세를 두려워하여 감히 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니, 전하께서 존례(尊禮)하고 죄주지 않는다면 공신(功臣)과 대신(大臣)은 무엇을 징계(懲戒)할 것이며 필부 필부(匹夫匹婦)는 무엇을 스스로 다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특별히 유음(兪音)을 내리시어 그 죄를 명단(明斷)하심으로써 대신이 함부로 권세를 번지게 하는 것을 막으시고, 궁(窮)한 백성의 억울한 분(憤)을 설욕하여 주시면 국가에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경(卿) 등의 말은 비록 심히 좋으나 홍윤성(洪允成)의 죄목(罪目)은 모두 애매하다."
하였다. 글 아래에 이극돈(李克墩)의 말로써 죄를 청한 것이 두세 번이나 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일이 바야흐로 끝난 것도 아닌데, 너는 어찌하여 번거롭게 말하느냐?"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발췌 / 정리 윤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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