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동남아 최강을 향해 꿈틀대는 ‘베트남’을 가다” - (上)편
[부여] “동남아 최강을 향해 꿈틀대는 ‘베트남’을 가다” - (上)편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8.10.25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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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국가 중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는 베트남을 부여의 친목 단체인 A회에서 2박4일 일정으로 역사, 문화, 관광 등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동남아 최강을 꿈꾸는 베트남에서도 최대 도시인 남쪽에 위치한 옛 남베트남 수도인 호치민시(사이공)를 둘러보면서 베트남 전체를 투영해 보기로 했다. 현지 한국인 가이드 한승주 ANY TOUR Company 대표(이하 한 대표)의 도움이 참고가 됐다. 편집자 말
 
♢ 베트남 개요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베트남어를 사용하고 면적은 CIA기준 331,210km로 한국의 약 3배이며 인구는  2018년 통계청 기준 96,491,000명으로 세계15위에 해당한다. GDP는 2018년 IMF기준 2,414억 달러로 한국하고는 7배 정도 차이가 나고 종교는 불교와 카톨릭이 많이 차지한다.  해안선은 남북으로 3,444km, 동서로는 최장 600km·최단 48km로 짧아 남북으로 길쭉한 지형으로 돼 있어 기후 또한 차이가 심한 편이다. 북쪽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정도의 사계절이 있는 반면 남쪽은 건기와 우기로 구분 짓는다. 최북단 사파라는 곳은 유일하게 눈이 오는 지역이다.

​베트남인은 54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고 이 중 비엣족(낀족)이 전체인구의 85.72%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소수민족이다. 소수민족은 각각의 자체 법을 제정해 놓고 시행하는데 이는 베트남 국가법보다 우선시 적용한다.

​최근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면 1884년부터 1945년까지 프랑스 식민지가 됐다가 독립했다. 남북으로 갈라진 상태의 베트남은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 등 연합군이 1961년 참전했고 1975년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함락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이후 1979년2월17일 중국과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베트남 주력 부대가 캄보디아에 있었음에도 열대 산악지형에 익숙지 못한 중국군은 많은 피해를 입고 국경에서 40km 떨어진 요충지인 ‘랑선’을 당해 3월6일 점령하고는 “징벌적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철군한다”고 핑계를 대고 철군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호치민시 개요
호치민시는 남쪽 지방에 위치한 베트남 최대 인구(800여만명이상)를 자랑하고 면적은 서울의 3.4배 정도다. 상업도시로 경제규모 및 교역규모가 베트남 내 최대이며 구 사이공으로 익숙한 호치민시는 호치민 주석의 염원을 보답하기 위해 해방 후 개명했다. 이 도시를 개명하게 한 인물인 호치민(1890~1969)은 베트남 공산당의 창설자로 프랑스 식민지로부터 베트남민족 해방에 큰 역할을 한 혁명가·정치가로 현대 베트남 최고의 민족지도자이자 영웅으로 숭상되고 그는 평생을 독신의 삶을 살았다.
 
♢ 첫째 날(10월19일)

인천국제공항 – 호치민시 떤선녓 국제공항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호치민시 떤선녓 국제공항

​인천공항에서 이륙 후 창공에서 아침 해의 배웅 맞은 비행기는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떤선녓 국제공항을 향해 미동 없이 미끄러져 날아갔다.
도착한 공항의 날씨는 다소 습도가 높고 더운 편으로 우리나라 초여름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생활과 공유한 오토바이(교통, 범칙금, 주정차, 출산율)
공항을 나와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일행의 눈에 들어온 놀라움이 있는데 다름 아닌 오토바이의 운집이동이다. 이 오토바이의 시공을 뛰어넘는 이동 모습은 여행 기간 내내 일행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마 베트남 최고의 관광상품이라고 말할 정도다. 아니 문화상품이랄까. 이왕지사 말 나온 김에 베트남의 명물 오토바이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오토바이의 탑승자 모두는 헬멧을 썼다. 안 쓰면 1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우리로서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우리 돈 25만원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신호 대기 중인 오토바이

​전국에 오토바이가 5천만대, 물경 8천만대까지라는 말이 나온다. 인구 1억 가까이 된다고 보면 웬만한 사람이면 오토바이를 자가용으로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생활과 밀접한 관계의 오토바이는 도로에서 차량 수를 훨씬 앞질러 이동할 때는 마치 차를 몰고 다니는 착각마저 든다. 이런 와중에 사고가 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광경을 목격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국민의 낙천적 사고로 인해 교통흐름에 대부분 순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오토바이

또 한가지 이곳은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기후 조건으로 인해 오토바이에 우비를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그러다 비가 올 때면 거리의 진풍경이 한바탕 벌어진다. 오토바이의 탑승자는 모두 일제히 우비를 쓰는 데 이는 마치 군대의 제식훈련과 같은 모습을 연상케 해 놀라움을 주고 있다. 실제 이날 비가 오락가락해 많은 오토바이 탑승자는 각각의 디자인에 맞는 우비를 입고 운전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질서를 지키면서 앞 오토바이를 따라가고 있다

여행 내내 시내를 보면 인도에 사람이 다니는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다. 희한한 일이다. 인도를 자세히 보면 경비원 비슷한 제복을 입은 사람이 규칙적인 거리를 두고 눈에 띈다. 이들은 용역업체에서 고용한 사람들로 인도에서 오토바이의 주정차 관리, 도난방지, 질서유지 등의 책무를 하는 사람이다. 오토바이가 우선시되는 사회다 보니 식당, 가게, 점포 등 상행위를 하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를 주정차할 수 있게 돼 있어야 장사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장사를 포기해야 한다. 주정차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도이고 생업과 삶의 한 공간이기도 한 셈이다.

오토바이가 생활의 전부 다 보니 스킨십도 자연적으로 오토바이에서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생률이 증가해 해마다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이 성문화가 상당히 개방화된 면도 한몫한다.​


차 주위로 엄청나게 많은 오토바이가 움직이려고 대기중에 있다

​실제 베트남 인구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2009년 8,584만명, 2015년 9,434만명, 2018년 9,649만명 순으로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3살만 되면 오토바이를 탄다는 베트남 국민!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인구절벽에 이를 타개하고자 온 나라 각계가 신경을 쓰고 있는데 베트남의 오토바이 문화를 벤치마킹해보는 우스개 상상도 해 본다(필자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생각을 할까).

베트남 대표 음식 쌀국수​


쌀국수

​다음 이동장소는 식당이다. 베트남 하면 생각나는 것이 쌀국수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보급이 점진적으로는 되는 음식 중 가장 빠른 것이 베트남 음식일 게다. 쌀국수, 월남쌈 등 우리나라의 입맛에 맞게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의 쌀국수 맛은 어떨까. 야채와 쇠고기가 들어가고 약간의 향내가 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 음식이 일행들에겐 아직 익숙지 못한 것 같다.

한국인의 거리(간판과 문자)
이곳을 나와 ‘한국인의 거리’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국인의 거리엔 한글, 영어, 베트남어가 공동으로 간판에 쓰여있다

이곳은 10~15년전쯤에 한국인의 주 거주지가 있던 곳이다. 간판에 친숙한 한글을 비롯 영어, 베트남어가 사이좋게 나열된 것이 과거의 영화를 말해준다. 이국에서 보는 한글이 자랑스럽게 와닿는 순간이다. 옛 명성은 온데간데없고 현재는 소매 치기 등 우범지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기실 베트남의 한국교포는 15만명 정도다. 이중 호치민시에 거주한 많은 옛 한인이 이곳의 거주지를 떠나 어디에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푸미흥’ 신도시다. 
푸미흥 신도시는 호치민시 인구증가로 인한 현대화·문명화된 신도시계획을 구상해 추진한 지역으로 한인이 대거 이주했으며 한국어로도 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한인 밀집 거주지다. 각광받는 도시로 손꼽는 만큼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간판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에 관련된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간판에는 번지수가 의무적으로 기재하게 돼 있다. 이는 프랑스 식민지의 도시계획 영향에 따른 것으로 유명 점포는 점포명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 번지수로 이름을 불리는 게 많다.

간판 얘기를 거론했으니 간판에 새겨진 베트남 문자에 대해 알아보자.
베트남 문자는 언뜻 보면 영어 같고 자세히 보면 영어에 기호를 붙인 형태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알파벳을 사용한다. 그런데 사용하지 않는 알파벳과 알파벳을 변형해 쓰는 문자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알파벳은 ‘J, F, Z, W’이고 변형 알파벳은 ‘D(ㅇ,ㅈ 중간 발음)’에 허리벨트를 한 ‘Đ(ㄷ,ㄹ 중간 발음)’문자다.

비텍스코 파이내셜 타워와 사이공강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하지만 공항에서부터 내리던 비는 야속하게 그치질 않아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변경했다.
베트남 금융그룹 비텍스코 그룹의 본사 사옥이자 호치민 시의 대표적 마천루인 ‘비텍스코 파이내셜 타워’를 찾았다.​


비텍스코 파이내셜 타워에서 본 사이공강과 빌딩들

​이 건물은 지상68층, 지하 3층으로 총 72개 층으로 구성돼 있고 높이는 267m로 2010년 완공 당시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손꼽혔다. 건물 52층 벽 부분에 큰 헬기장이 설치돼 있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며 우리나라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NCSEA 선정 2011년 최고의 건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건물의 전망대에서 밖을 보면 호치민 시가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의 내부는 원을 그리며 이동할 수 있어 주위를 모두 볼 수 있다. 다만 밖에 비가 오는 이유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 멀리 보지 못하는 아쉬운 점에서 끝내 화가 치밀어 유리 벽에 붙은 빗방울을 흘러내리게 한다.

주위 한편엔 사이공강이 흐른다.
캄보디아에서 발원한 사이공강은 북쪽에서 225km 뻗어 있으며 메콩 강 삼각주에서 북동쪽으로 20km에 있는 나베 강으로 흘러가서 남중국해로 합류한다. 이 강은 식수, 경제, 운송 등 호치민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호치민시의 젖줄인 셈이다.
강 위의 각종 배에 생동하는 경제를 싣고 유유히 움직이고 있다. 건물 주변의 높은 빌딩은 동남아 강국으로의 발돋움을 상징하고 있다.

​저녁은 우리나라에서 볼 때 퓨전음식점으로 보이는 데 음식은 보편적으로 입맛에 맞는 분위기다. 이후 불가리아인이 운영하는 수제 맥주집으로 이동했다. 서양풍의 깔끔한 인테리어에 수제의 맥주는 하루의 피로를 날렸다.

 

/윤용태 기자 yyt690108@hanmail.net


다음 (中)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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